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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만두가 들려주는 조선 왕비 이야기

  • 기사입력 2021.01.11 17:14
  • 기자명 이성하 인턴기자

 

[인플루언스뉴스 l 이성하 인턴기자] 드라마에서 주로 비춰진 조선시대의 왕비의 모습은 공주에 비해 존재감이 떨어지고 항상 교활한 후궁에게 당하는 비운의 캐릭터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 조선시대의 왕비의 역할은 미디어가 보여준 것 이상으로 엄청났다.

각종 교양 상식을 만화 영상으로 알려주는 교양만두가 지난 7일 자신의 채널에 ‘의외로 미친 존재감이었던 조선 왕비 클라쓰 ㅣ 조선시대 왕비로 살아남는 법’ 이라는 제목으로 영상을 업로드했다. 영상은 조선시대에서 가장 바쁘고, 힘들고, 권력이 막강했던 왕비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영상에 따르면 조선의 왕비는 왕비가 되는 과정부터 험난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왕비가 되는 가장 정석적인 방법은 세자빈에서 왕비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세자빈은 10살 전후의 소녀들을 대상으로 ‘간택제도’를 통해 선발했다. 그러나 의외로 양반들은 자신의 딸이 세자빈이 되는 것을 꺼려했다. 왜냐하면 간택된 세자빈의 집안은 다른 양반들과 궁궐의 관계자들로부터 극심한 견제를 받는 것은 물론 간택제도에서 떨어지게 될 경우는 부정적인 낙인과 함께 평생 결혼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쟁과 험난한 과정을 뚫고 왕비가 되어도 왕비의 하루하루는 쉬운 일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왕비는 궁에 살고 있는 모든 여자들을 아우르는 조직인 내명부와 공주, 옹주, 사대부 정실부인을 아우르는 외명부의 총 책임자로 이들의 ‘리더’ 역할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궁중에서 일어나는 모든 궁중암투와 갈등 등을 관리해야 하는 것도 왕비의 몫이었다.

또한 왕비는 매년 50회가 넘는 국가제사와 각종 궁궐 관련 잔치를 관리하는 총 지배인이기도 했다. 가령 신하들에게 연회를 베푸는 ‘회례연’, 80세 이상 노인 200명을 초청해 음식을 대접하는 ‘양로연’ 그리고 누에를 치는 ‘양잠’을 장려하기 위한 ‘침잠례’ 등 모든 행사들의 관리는 왕비의 역할이었다. 따라서 왕비는 1년 내내 과로에 시달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고된 것 같은 왕비는 왕비가 된 이후에 상당한 정치적 권력을 갖게 된다. 바로 수렴청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왕이 왕비보다 빨리 죽고 세자가 어릴 경우 왕비가 임시적으로 왕의 옥새를 받아 왕의 역할을 한다. 또한 이후의 왕도 옥새를 받고 왕이 되기 위해서는 왕비의 승인이 반드시 있어야 했다. 따라서 왕비는 후대의 왕까지 결정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자리였다.

이렇게 힘들지만 막강한 권력을 가진 조선시대 왕비에 대한 정보를 접한 시청자들은 “차라리 후궁이 되는 게 나을 정도로 힘든 것 같다.” 혹은 “어떻게 저렇게 버티고 살았을까?”라는 반응들을 보였다. [영상출처=교양만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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